흩어진 생각을 모으기 시작하며
이곳은 흩뿌려져 있는 생각의 조각들을 함께 모아서 보다 발전된 형태의 생각으로 뭉치고 다듬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일상 속에서 떠오른 조각, 다양한 콘텐츠를 소비하는 과정에서 떠오르는 질문, 혼자 멍하니 있다가 떠오르는 상상들. 각각의 어렴풋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조각들은 금세 사라지기 쉽습니다. 이곳에서는 그것들을 캡처해두고 곱씹어 높은 해상도로 만들고자 합니다. 답을 내려는 게 아니라, 연결하면 무엇이 보이는지 궁금해서입니다. 그리고 혼자서는 다 못 보니, 사람들과 나누며 함께 깎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첫 조각은 오래된 질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손.
애덤 스미스의 말은 단순합니다. 각자 자기 이익만 좇는데, 그 결과로 전체가 알아서 굴러간다는 것입니다. 빵집 주인은 제 아침을 위해서가 아니라 돈을 벌려고 빵을 굽습니다. 아무도 지휘하지 않는데 질서가 생깁니다. 그게 보이지 않는 손입니다.
그런데 요즘 세상을 보면 자꾸 걸립니다. 시장에 맡겨둔다던 미국도, 정부가 산업을 직접 미는 중국도, 결국 다들 자기 경제를 손수 운전하려 듭니다. 그렇다면 지금 자유시장을 추구하는 나라가 있기는 할까요. 아무도 지휘하지 않는다는 그 손은 어디로 갔을까요.
여기서 저는 한 가지 사실에 눈이 갔습니다. 금융의 중심은 한자리에 머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미 중세 말 제노바와 베네치아 같은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이 금융의 중심이었으니, 이건 아주 오래된 패턴입니다. 17세기에는 그 심장이 암스테르담이었습니다. 네덜란드는 증권거래소와 중앙은행 격의 기관을 세우며 근대 금융을 발명하다시피 했습니다. 그러다 18세기, 중심은 서서히 런던으로 넘어갑니다. 흥미로운 건 이게 하루아침의 사건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네덜란드 자본은 오히려 런던 시장으로 흘러들며 영국의 부상을 도왔습니다. 중심은 한 번에 무너진 게 아니라 수십 년에 걸쳐 옮겨갔습니다. 그리고 20세기, 두 번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그 심장은 다시 런던에서 뉴욕으로 넘어갑니다.
이 이동을 들여다보다 생각이 하나 들었습니다. 어쩌면 보이지 않는 손은 사라진 게 아니라, 작동하는 층이 바뀐 게 아닐까요. 예전엔 빵집과 손님 사이에서 움직였다면, 지금은 더 큰 자본과 자본 사이에서,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 움직이는 건 아닐까요.
여기까지 오면 솔직히 음모론의 냄새가 납니다. 누군가 뒤에서 판을 짠다는 식의 이야기 말입니다. 저는 그 길로 가고 싶지 않습니다. 증명할 수도 없고, 증명하려 들면 신이 있느냐 없느냐를 다투는 것처럼 끝이 나지 않으니까요.
대신 제가 붙잡은 건 다른 것이었습니다. 자본은 점점 큰 쪽으로 모이는 것 같다는 느낌. 그리고 가장 큰 자본은 극적인 한 방이 아니라 꾸준함을 택한다는 것. 극단으로 치달으면 판 자체가 뒤집히고, 그러면 암스테르담이 런던에 자리를 내줬듯 중심을 잃으니까요.
그렇다면 평범한 개인에게 주는 함의는 무엇일까요. 극적인 수익을 좇는 건 그 큰 흐름을 거스르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반대로 긴 시간을 두고 흐름에 올라타면, 요란하진 않아도 함께 자라는 건 아닐까요. 단, 한 판에만 걸어서는 안 됩니다. 암스테르담도 런던도 영원하지 않았으니까요. 시점도, 지역도, 성격이 다른 자산들로 넓게 펼쳐두는 것. 큰 자본이 하는 일도 결국 그 분산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겸손해집니다. 큰 자본에는 흐름을 먼저 읽는 정보력이 있습니다. 개인에게는 없습니다. 게다가 묘한 건, 정보가 많다고 꼭 진실에 가까워지는 건 아니라는 점입니다. 때로 정보는 맑게 흐르지 않고 흐리게 흐릅니다. 누가 일부러 흐린다고까지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매체가 폭발하고 제목이 자극을 좇는 지금, 정보는 저절로 흐려지는 것 같습니다. 아무도 지휘하지 않는데 질서가 생긴다던 그 손처럼, 아무도 흐리지 않는데 흐려지는 것입니다.
그럼 개인은 그저 물결에 떠 있을 수밖에 없을까요. 저는 조금 다르게 봅니다. 한 분야에만 매몰된 지식으로는 오히려 흐름을 읽기 어렵습니다. 여러 갈래의 앎을 펼쳐놓고 그것들을 엮어낼 때, 비로소 흐름의 모양이 어렴풋이 보입니다.
문제는 그 엮는 일이 오늘날 더 어려워졌다는 것입니다. 매체는 세대와 지역으로 갈라졌고, AI는 정보를 기하급수로 불립니다. 뉴스를 읽어도 핵심 대신 제목의 자극이 먼저 박힙니다. 이걸 꿰뚫으려면 훈련이 필요한데, 정작 훈련할 마땅한 장이 없습니다.
그래서 쓰고 보니 처음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흩어진 생각을 제 손으로 엮어보는 일. 그게 바로 이곳을 시작한 이유였습니다. 흐름을 읽는 눈을 기르는 일과, 조각난 생각을 잇는 일이 결국 같은 것이었습니다. 없다던 그 훈련의 장을, 저는 여기서 스스로 만들어보려 합니다.
저는 확신하지 않습니다. 틀렸을지도 모릅니다. 이 글도 서툰 첫 훈련일 뿐입니다. 다만 이렇게 더듬어가다 보면, 제가 다 안다고 믿는 오만에서는 조금 멀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신을 알아갈수록 제가 다 알 수 없음을 깨닫는 것처럼요.
여기까지가 제 첫 조각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참고 자료
- 애덤 스미스,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 1776. —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표현은 이 방대한 책에서 사실 단 한 번 스치듯 등장합니다.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시장 만능이 아니라 개인의 의도를 넘어선 결과가 생긴다는 맥락의 비유입니다.
- 레이 달리오, 변화하는 세계 질서(The Changing World Order), 2021. — 금융 중심지가 암스테르담에서 런던, 뉴욕으로 옮겨간 흐름을 제국과 기축통화의 긴 주기로 다룹니다. 책 뒷부분에서는 중국의 부상까지 같은 틀로 분석합니다.